이정재 프로필

2021. 11. 5. 03:23유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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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72년 12월15일 (50세, 임자년 임자월 경진일) 서울특별시 중구

본관- 전주 이씨 효령대군파의 20대손인데 시조 43세손 宰자 항렬을 쓰고있다.

신체- 180cm, 70kg, B형

데뷔- 1993년 SBS 드라마 공룡선생

학력- 숭의초-청담중-현대고-동국대 연극학 학사-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공연영상예술학 석사

병역- 육군 제52보병사단 상병 소집해제 (전투방위)

취미- 골프, 영화감상

특기-  인테리어, 구기종목, 보디빌딩

종교- 개신교

 

출연작품

영화

1994년 젊은 남자

1996년 알바트로스

1997년 박대박/ 불새

1998년 정사

1999년 태양은 없다/ 이재수의 난

2000년 시월애/ 인터뷰/ 순애보

2001년 선물/ 흑수선

2002년 오버더레인보우

2003년 오! 브라더스

2005년 태풍

2008년 1724 기방난동사건

 

2010년 하녀(훈 역)

2012년 도둑들 (뽀빠이역)

2013년 신세계 (이자성역)

2013년 관상 (수양대군역)

2014년 빅매치 (최익호역) 

2015년 암살 (염석진역)

2017년 신과함께-죄와벌 (염라대왕역)

2018년 신과함께-인과연 (염라대왕역)

2019년 사바하 (박웅재역)

2020년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레이역)

2021년 헌트

 

드라마

1993년 SBS 공룡선생

1994년 KBS 남자는 외로워/ 느낌

1995년 SBS 사랑은 블루/ SBS 모래시계

1997년 SBS 달팽이

1998년 SBS 백야 3.98

2007년 MBC 에어시티

2009년 MBC 트리플

2019년 JTBC 보좌관/ 보좌관2

2021년 SBS 날아라 개천용/ 넷플릭스 오징어게임

성장배경

도회적으로 잘생긴 외모와 세련된 스타일 그리고 초중고 학력 때문에 어릴 때부터 강남 부잣집 도련님으로 자랐을 것 같지만 실은 가난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SBS 힐링캠프에 출연해 밝힌 바에 따르면 양친은 모두 부유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외가 쪽은 지방에서 양조장 몇 개를 경영했고 친가 쪽은 의사집안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본인은 국민학교 재학 이후로는 유복했던 기억이 없다고 한다. 의사셨던 조부가 연달아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마한 것이 집안의 뿌리를 흔드는 원인이었다는 듯. 가압류를 당하기도 하고, 이사를 다니면서 화장실이 바깥에 딸려 있는 단칸방에서 식구가 함께 생활했고 때로는 가족이 서로 흩어져 살아야 할 때도 있었다고. 고등학교 재학 시절엔 등록금을 내지 못해서 반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매를 맞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어릴 때 상당히 왜소해서 "소소"라는 아명으로 불렸다고 한다. 

게다가 힐링캠프에서 처음 밝힌 사실인데, 자폐증을 앓고 있는 형이 있다. 이제까지 많은 매체에서 '외아들'이나 '무녀독남' 등으로 설명되고는 했기 때문에 몸이 불편한 형이 있다는 것을 밝힌 그의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과 안타까움을 느꼈다. 데뷔 후 처음 밝힌 어려운 가정사에 그의 팬들은 물론이고 일반 시청자들도 많이들 놀랐는데, 담담하게 '내 형이니까 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이것이 나와 내 가족의 삶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하는 모습이 보는 사람의 마음을 더 안타깝게 했다는 평. 이외에도 IMF가 닥쳤을 때 소속되어 있던 소속사가 부도가 나면서 빚을 대신 짊어지게 되고 투자했던 부동산에서 아파트 중도금을 미납하게 되는 등 성공가도를 달린 후에도 금전적으로 힘든 일이 있었다. 차비가 없어 밖에도 나가지 못할 정도였다고. 힐링캠프에서 강우석 감독에게 영화 세 작품에 출연하는 개런티를 미리 받았던 덕에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었고 그래서 찍은 영화가 《이재수의 난》, 《순애보》, 《선물》이다. 고생 하나 하지 않고 자랐을 것 같지만 여러모로 힘든 면이 많았던 듯.

하지만 본인은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진 않는다. 2008년에 아레나와 한 인터뷰를 보면 “세상 살면서 그 정도로 안 힘들어본 사람 정말 아무도 없다. 그런데 유독 자기만 힘들었던 것처럼 과거를 끄집어내 말하면서 동정표를 유도하는 이들이 있다. 개인적으로 썩 좋아하진 않는다. 누구에게나 개인적인 스토리는 있고 그 강도는 지극히 주관적인 것 아니겠나." 이제까지 친형에 대해서 함구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읽힐 수 있다. 아무튼, 고생하며 살아온 것 에 비하면 참으로 평온하고 맑은 소년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배우가 되기까지

원래 이정재는 배우가 아니라 건축 인테리어나 미술 쪽으로 직업 방향을 잡았다. 고등학교 때 집안 사정이 어려웠던 덕에 학업에는 흥미를 붙이지 못하고 노는 데에 정신을 팔았다고. 그러다 고교시절 미술 교사가 그의 미술적 재능을 알아보고 자신이 아는 미술학원에 보내서 공짜로 입시교육을 받게 해 주었다고 한다. 그렇게 미대 진학을 도전했으나, 성적이 따라주지 못해서 결국 미대는 갈 수 없었다.
대신에 아트스쿨 같은 직업학교에서 인테리어와 건축을 공부했다. 지금도 연기 외에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라고 한다. 직접 설계도를 그리기도 한다고. 학원비를 벌기 위해서 압구정동 카페에서 서빙 알바를 시작했는데, 그때 매니저의 눈에 들어서 모델로 발탁된다. 그리고 모델료가 알바비보다 훨씬 높았기 때문에, 바로 알바를 그만두고 모델업계에 몸을 담게 된다. 그리고 그 후 93년에 출연한 롯데 크런키초콜릿 광고가 대박을 쳤다. 90년대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 광고를 기억할 것이다. 《모래시계》에 재희 역으로 발탁된 것도 이 초콜릿 광고 덕분이라고. 사실 같은 해에 롯데 초콜릿 다른 제품인 가나초콜릿 광고도 찍었지만 크런키 쪽이 더 인상에 강하게 남은편.

이러면서 《젊은 남자》에도 캐스팅이 되고 《느낌》에도 캐스팅이 된다. 그러나 결정적인 작품은 역시 90년대 국민 드라마 《모래시계》. 당시 최민수보다 오히려 더 인기를 모으면서 백재희를 죽이지 말아달라는 편지가 SBS에 쇄도하는 등 대국민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 작품으로 1995년에 SBS 신인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모래시계를 다 찍고 난 후 20대 초반에 찾아온 쏟아지는 인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군입대를 해버린다. 방위로 갔다고 비판받았으나 평발이라 방위가 나온 것이라고 한다.

 

이른전성기-암흑기

군 전역 후 다시 연기를 시작했지만, 연기가 맞는 옷인지도 모르겠고 갑작스레 얻은 인기와 돈 때문에 이 직업이 자신의 길인지도 잘 모르던 상태에서 설상가상으로 당시 소속사 부도로 인해 그 빚을 모두 떠안게 되어 심적으로 많은 고생을 했다고 한다. 사실 모래시계나 느낌 같은 경우 2010년대에도 유튜브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는데 발연기가 무엇인가 알 수 있을 정도로 처참하다. 다만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면 저 당시에 드라마에서는 뭔가 대단한 연기를 요구한 일이 별로 없었고 그 당시는 그정도했어도 문제가 없는 수준이었다.
진짜로 연기가 즐겁다고 느낀 건 90년대 말 정우성과 《태양은 없다》를 찍으면서부터였다고 한다. 여태까지 맡았던 캐릭터들과 많이 다른 쌈마이 역할이었고 영화 자체도 다소 독특한 느낌이 있었다. 이후 정우성과는 평생을 같이 하는 친구사이가 된다. 이 영화로 1999년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다. 당시 후보로는 최민식, 한석규, 박중훈, 최민수와 함께 쟁쟁한 배우들. 이때 나이가 27세였는데, 최연소 남우주연상 수상자로 지금도 이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

 

우습게도 청룡영화상의 저주인양 거의 10년간 암흑기가 지속된다. 청룡영화상을 받은 해에 개봉했던 이재수의 난은 배우들 모두가 고생은 고생대로 했음에도 흥행 참패. 당대의 여배우였던 심은하의 은퇴작 인터뷰도 망했다. 장진영과 함께한 오버더레인보우, 이미연과 함께한 흑수선, 곽경택 감독이 천만을 노리고 장동건, 이정재를 캐스팅해 만들었던 태풍은 대대적인 홍보 및 밀어주기까지 했으나 500만에 그쳤다. 문제는 제작비가 어마어마한 작품이라 500만도 적자였다는 것. 이 후 에어시티로 복귀하면서 드라마에서라도 재기를 꿈꿨으나 최지우-이진욱만 연결해주고 끝났고 커피프린스 1호점의 감독이 각잡고 만든 트리플에 출연했으나 역시 보기 좋게 망했다. 그나마 이영애랑 작품했던 '선물', 오! 브라더스는 이범수와 어느 정도 잘되었지만, 1999년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의 이정재는 한물간 흥행부도수표라는 평가를 받으며 2009년에는 거의 퇴물급의 배우가 되어갔다.

 

 

 

다시 전성기

2009년에 하는 작품마다 안 된다는 평가를 받던 이정재는 영화계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은 임상수 감독과 손을 잡으며 연기 변신을 꾀한다. 전도연이나 윤여정같은 연기 도사들과 함께한 하녀는 이정재에게 부활의 신호탄을 올려준다.
이후 본인 인생에 모래시계와 더불어 가장 대표하는 작품이 될 《도둑들》, 《신세계》로 연기, 인기, 흥행 면에서 제2의 전성기가 찾아온다. CF나 근근히 찍어가던 한물간 청춘 스타에서 압도적인 분위기와 중후한 매력을 지닌 폭발력있는 중년 연기자로 정착했다.

이후 송강호와 함께한 《관상》에서 수양대군역을 맡았는데 러닝타임의 반만 출연하고도 송강호를 압도하는 존재감으로 필모그래피를 채워나갔다. 한국 역사상 가장 매력적인 수양대군을 연기하였는데 이정재 본인 또한 이 역할을 놓치게 될까봐 전전긍긍한 것으로 유명하다. 총 관객 약 913만을 기록하며 역대 사극영화 중 네 번째 흥행작에 오른 관상은 평이 엇갈리고 지루하다는 평도 있으나, 이정재가 연기한 수양대군에 대해선 거의 만장일치로 호평 일색. 많은 기자들은 관상이 이정재의 대표작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일반 관객들의 평도 매우 좋다. 관상보러 갔다가 수양보고 나왔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니... 첫 등장 장면을 런웨이로 만들어 버리며 영화 시작 후 한 시간이 훌쩍 지나서야 나오는 첫 등장 장면을 포스로 잠식해 버렸다. 누리꾼들은 이정재의 등장씬을 늑대의 유혹에서 강동원의 우산씬, 아저씨에서 원빈의 삭발씬과 함께 한국영화 3대 등장씬이라고 부른다. 이병우 음악감독은 그 장면에 쓰인 음악이 영화에서 가장 많은 돈을 들였다고 했고, 한재림 감독은 슬로모션 촬영 및 큰 개 두마리를 동원하여 시각적, 청각적으로 위협감을 주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배우 본인은 이 역할을 위해 내셔널지오그래픽이나 동물의 왕국 등을 시청하면서 극중 '이리'의 상이라 표현되는 수양대군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이정재에게 관상 시나리오가 온 것은 2012년 여름에 부산에서 신세계를 촬영할 때였는데, 감독이 직접 찾아와 대본을 전했다고. 처음에는 더 센 이미지의 남자 배우가 맡아야 하지 않겠냐면서 출연을 망설였지만 하녀의 고훈 캐릭터에서 배어나온 기품과 카리스마를 원한다는 감독의 설득에 결국 역을 맡게 된다. 결과는 대박. 배우 본인의 아버지까지 "네가 무슨 수양대군 이미지를 갖고 있냐?"면서 말렸다는데, 결국엔 역사상 최고로 섹시한 수양대군이라는 평을 받게 되었다. 더불어 연기력 논쟁에도 종지부를 찍었다. 특히 수양대군 등장씬은 한국 영화 최고의 등장씬이라는 평가가 있을정도로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냈다.

이후 영화 빅매치에 이어 2015년 7월 22일 개봉한 영화《암살》에서 두 얼굴의 독립군인 염석진 역할을 하며 천만영화 두편을 지닌 배우가 되었다. 암살에서 두 얼굴의 임시정부 요원 염석진으로 나온다. 역할을 위해 무려 15kg이나 감량했다고 한다. 조진웅의 증언에 의하면 촬영이 끝나고 배우들끼리 같이 밥 먹을 때 김치를 물에 씻어 먹는가 하면, 하정우가 촬영 후 같이 술 마시자고 계속 꼬드겨도 끝까지 술 한방울 마시지 않았다고 한다. 게다가 염석진의 불안하고 날카로운 심리를 표현하기 위해 48시간 무수면 상태에서 촬영을 진행했다고 하니, 연기에 대한 이정재의 열정과 노력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그 고생에 보답하듯 암살이 8월 15일 광복절에 천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도둑들에 이어 두 번째 천만 영화를 갖게 되었다.

2016년 7월 27일 개봉한 '인천상륙작전' 에서 맥아더의 명을 받고 X-Ray 작전을 수행하는 장학수 대위 역할을 하였다.
2017년 5월 대립군으로 사극에 도전했지만, 흥행에 실패했다. 그러나 2017년 12월과 2018년 8월에 개봉한 신과함께 시리즈에서 염라대왕 역으로 특별출연하면서 흥행에 크게 일조했다. 염라대왕의 긴 헤어스타일 때문에 하정우는 이정재를 '염라언니' 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그리고 2019년 2월 20일 개봉한 사바하에서 박 목사 역할을 맡았다. 이후 보좌관을 통해 10여 년 만에 드라마에 출연했고, 시즌 2까지 제작되며 꽤 성공적으로 드라마에 복귀했다. 2020년 여름,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레이' 역할로 나오며 악역으로써 열연을 보여준다.

2021년,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에 주연으로 출연하여 첫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에 참여했고, 작품이 전세계적으로 히트를 치며 모래시계 이후 오랜만에 드라마 흥행작을 하나 추가했다. 그간 카리스마 있는 높은 사람 역할을 주로 해오던 이전과는 다르게 기존 이미지와는 잘 안 어울리는 찌질한 서민 연기를 소화했는데, 이를 위화감 없이 해냈다고 인정받고 있다. 특히 3화에 달고나 핥는 연기는 백미. 국내 인지도야 이미 오래 전부터 탑급이었던 이정재지만, 오징어 게임의 전대미문한 대흥행으로 인하여 세계적인 인지도도 쌓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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